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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못 느끼는 20대, '보수화'보다 무섭다

이전 20대는 사회 참여에 적극적이었다. 세상을 바꾸려 무던히 노력했다. 한국 현대사에 큰 획을 그은 4·19, 6·10은 '행동하는 학생들'의 힘으로 이뤄냈다. 현재 20대의 모습은 어떤가? 학창시절 IMF에 무너지는 부모님을 보고 자랐다. 사회에 나갈 때가 되자 지독한 경제침체가 발목을 잡는다. 20대는 점점 세상 밖으로 나오길 두려워하고 있다. '88만원 세대', '인턴 인생'이 되지 않기 위해 제 몸값 높이기에 몰두한다. 이를 두고 20대가 보수화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왜 그럴까? <오마이뉴스>는 '우향우 20대?' 기획을 통해 현재를 살고 있는 20대를 재조명 해보고자 한다. 20대의 실력을 능가할 현존하는 성인 세대는 없다. 선행학습으로 다져진 지식에, 유창한 어학 실력, 악착 같이 관리한 학점, 취업을 위해 쌓은 사회 경험에 실전 능력까지. 요새 대학가는 명실 공히 '인재의 보고'다.

그렇다고 이들의 실력이 하늘에서 떨어진 건 아니다. 청춘의 유이한 자산이라는, 열정과 기회를 몽땅 털어 얻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20대는 참으로 불운하다. 청춘을 바쳐 행복한 일상을 가꾸기 위해 애써왔건만 그들에 대한 보상물은 고작 유효기간이 박힌 일자리뿐이기 때문이다.


탈출구 없는 터널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 20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는 취업준비생. 현재 20대에게 취업은 가장 큰 '현실의 벽'이다.
ⓒ 김동환

평균적인 20대의 삶의 궤적이다. 3저 호황기에 태어나 비교적 부유한 환경 속에 성장했다. 민주주의의 역진(逆進)을 우려하지 않아도 될 시기를 인생의 절반 또는 절반 가까이 보냈다. 그러나 사춘기 무렵 외환위기를 만난다. 해마다 바뀌는 입시제도에 탈진 안 했다면 거짓말이다.


대학 들어가서도 여념을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공부 또 공부. 취업 광풍에 취침 무렵이면 '초주검' 상태가 된다. 그리고 또 다시 찾아온 경제위기. 현재 탈출구 없는 터널 속에 갇혀있다. 이 안에서 표류하고 있는 이들이 태반이다.


내가 지금의 20대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어느 입지에 서서 어떤 행동을 보일까. 당연히 안정적인 삶을 희구하게 될 것이다. 취업 준비에 천착해 세상사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했다면 '1등 신문'이 증폭하는 '좌파세력 무능론'에 세뇌될 수 있을 것이다.


촛불 들고 나가는 이들을 향해 담배 꼬나물고 "시간도 많네" 이런 '썩소' 어린 냉소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20대의 정치적 보수화 현상은 그런 의미에서 불가측의 상황은 아니다. '경제 살리기'를 기치로 든 이명박 후보에게 지지한 것도 '무개념'의 소산이라고 치부하기도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집단적 분노 표시에 익숙하지 않은 요즘 대학생


서울대 사회학과 홍두승 교수가 서울대 재학생 66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 13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생 중 한나라당 지지층이 20%다. 나머지 진보적 야당 지지층에 비해서는 소수라지만. 기실 이 20%의 정체가 주목된다. 아마도 상당수는 부유층의 자제로서, 고급 사교육을 받아 1등 대학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부모의 특권을 아무 문제의식 없이 대물림 받게 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쪽도 '안정 희구층'이다. 급격한 사회 변혁이 일어나 자신들의 안온한 부가 깨지는 걸 바랄 리 없다는 군상이란 의미이다. 그러나 앞선 '안정 희구층'과 이들 사이엔 '계급'이란 이름의 선이 그어져 있다. 따라서 1%로 추정되는 그 '안정 희구층'은 논외로 하겠다.


'안정에 대한 희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20대 보수화의 진정한 단초는 따로 있다. 바로 '분노의 상실'이다. 요즘 대학생 다수는 집단적 분노 표시에 익숙하지 않다. 민주주의의 위기 같은 '눈에 안 보이는 문제'는 차치하자. 등록금 폭등, 비정규직 인턴 양산 등 피부에 와 닿는, 자신들에게 근접한 이슈에도 직면하는 자세가 매우 소극적이란 이야기이다. '연대의 힘'을 맛보지 못한 탓이다.


그렇게 복잡다단한 목표물 쟁취 과정보다는 차라리 굴욕적이라도 강자의 아량을 좀 더 기다리는 현실적 접근 방식에 좀 더 익숙하다. 동의는 못 하나 이해는 하게 된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100만이 서울 도심을 가득 메운다 한들 이명박 정부가 이 '연대의 힘'에 각성하는가.


늦었지만, '분노'의 필요성 나누고 싶다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의장인 이원기 부산대 총학생회장이 15일 오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앞에서 등록금넷 주최로 열린 등록금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했다가 기자회견장에 뛰어든 수십명의 경찰에 의해 강제연행됐다. 경찰이 뿌린 최루액을 눈에 맞은 한 학생이 경찰에 항의하고 있다.
ⓒ 권우성

필자는 얼마 전 한 대학 학보에 '20대 무망(無望)론'을 펼쳤다(☞ 관련 글 바로가기). 빈틈이 많은 글이었던 만큼 많은 반론이 뒤따랐다. 필자의 코를 납작하게 하는 주옥같은 글이 적지 않았는데 이중 가슴을 깊게 후볐던 논리는 이것이었다.


'20대가 이렇게 되기까지 선배 세대는 무엇을 했는가'라는. 이른바 30대 이상 세대들이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지고한 가치를 진지하게 숭상했다면, 그렇게 해서 좀 더 영향력 있는 '연대의 힘'을 보여줬다면, 20대에게 이것이 사표(師表)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늦은 감이 없지만, 그래서 20대에게 '분노'의 필요성을, '연대의 힘'의 위대함을 나누고 싶다. 역사를 진전케 추동하는 것은 '분노'였다. 4·19, 5·18, 6·10, 2008년의 촛불 등 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준 항쟁은 분노를 동력으로 삼았다.


민주화는 이랬고. 산업화도 마찬가지. 지난 반세기 동안 일궈온 경제 성장의 자양분 역시 '분노'였다. 혹자들은 '위대한 박정희 각하의 영도력'에 의한 것이라고 보지만, 실은 기층 민중이 품은 "더럽다. 우리도 ○○국보다 더 잘 살겠다"라는 투지의 소산이라고 해야 옳다. 그러나 이 '분노'라는 것이 개인의 범주에서만 머물 경우 화병만 낳을 뿐이다. '분노'는 단결된 힘으로 승화돼야 한다. 그렇다면 '연대'의 틀이 필요하다. 그래야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by Realslow | 2009/07/28 15:03 | 주옥같은 기사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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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명랑노트' Seasi.. at 2009/08/02 17:42

제목 : 잊을만 하면 20대 타령이군요.
분노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알려드리죠. 제국주의 일본이 대한제국을 집어삼키려 할 때의 일입니다. 마침내 일제는 대한제국의 군권을 빼앗고, 나아가 군대를 해산시키려 하고 있었습니다. 대한제국의 최정예부대인 시위대는 이에 항거하여 무장하고 일본 제국군과 전투를 벌였으며, 이후 각지에서의 의병운동에 가담하여 그 지휘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대한제국 시위대 1연대 1대대장 박승환의 자결과 "군인이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가 충성을 다하지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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